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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Posting/마을 만들기

마을 만들기로 유명한 유후인, 그 명성 그대로...

by 동자꽃-김돌 2013. 2. 20.

2007년 한국YMCA 주민자치연구회 일행들이 유후인(油布, yufuin)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인구 약 11,000명의 작은 마을, 그러나 년간 4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으로 농촌관광으로, 마을 만들기로 성공한 사례로 소개된 곳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의 마을 만들기 담당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마을입니다. 

비오는 유후인 역, 사랑의 우산(무료)가 있어 비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서 2013년 2월 다시 유후인을 찾았습니다.  

1촌1품 운동으로 유명한 오이타 현의 지사(우리로 치면 도지사) 히라마쓰 모리히코는  유후인에 대해 "유후인 ‘무라오코시(마을만들기)’는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히면서 혈기 왕성한 마을 주민과 마을 리더를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유후인을 있게한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

 

사실 유후인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작은 농촌 마을 유후인은 건너편 벳푸시와는 다른 정겨운 온천이 있어 항상 관광개발 사업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개발 보다는 보존이 마을의 비전이라는 생각에 추진 중이던 리조트 사업 및 골프장 사업과 같은 발전 계획을 주민의 힘으로 막나냈고, 안전 안심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노력을 기울였던 곳입니다. 

 

 

그 중심에는 1971년에 구성된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마을의 미래를 생각하고, 마을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 계획을 세우면서 마을 자원 이외에 새로운 것들이나 이질적인 문화의 도입 등 점차 유후인 마을을 개방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모임의 핵심 멤버인 미소구치 군페이, 나카야 겐타로, 시데 고시가 주축이 되어 유후인의 비전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마을 진단과 학습 먼저

 

이 모임은 “이 마을에 우리 아이들이 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어 함께 토론하고 학습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1972년 <소 한마리 목장 운동>을 시작합니다.

유후인을 내려다 보고 있는 유후타케 산의 초원에 소를 방목하여 마을 수입을 올리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소를 구입할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시민들이 소를 키우기 위한 투자를 이끌어냅니다. 

소를 길러 나중에 송아지가 생기면 팔아서 투자 비용을 갚고 계속해서 소를 키울 수 있는 운동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소릴 키울 수 있어서 좋고, 도시민들은 자기 소를 가질 수 있어서 서로 간의 윈윈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마을 자원과 프로젝트(이벤트)의 결합

 

그러면서 1년에 한 번 소고기 먹기대회를 개최하고, 소리지르기 대회를 개최하여 독특한 축제로 전국 언론에 보도되고 마을 홍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유후다케 초원에 불을 놓는 축제를 만들어 관광객의 흥미를 이끌어냅니다. 시골 농촌사람들에게 흔한 초원에 불놓기가 축제와 소득 창출이 될 수게 만든 것입니다.  

 

유후인의 마을 만들기에서 마을의 자원인 유후타케산을 다양하게 활용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서 1975년에 시작된 “유후인 음악제”, 1976년에 시작한 “유후인 영화제” 등 다양한 시도로 작고 조용하고 따뜻한 온천 마을에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개발보다는 보존에, 관광객보다는 주민을 먼저 생각한 유후인

 

유후인은 개발보다는 보존이 마을 발전의 전략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런 전략은 <자연환경보호 조례-1972>, <모텔건축 등 건축규제조약-1983>,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1990>를 통해 언제든 관광객의 증가로 개발 중심적 행정과 정책의 유혹을 스스로 통제하고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면서 지금의 유후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노력이 유후인을 안전안심 마을로 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유후인 생산 농산물이 유후인 내 호텔과 관광지 내에서 소비될 수 있었고,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방문지로 그 명성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다시 찾은 유후인, 그 명성 그대로

 

이번에 다시 방분한 유후인의 명성은 그대로 였습니다. 유명한 빵집과 상점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고, 온천이 있는 호텔 역시 성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2011년 새로 생긴 Floral Village가 조금 이질적이었지만 방문객들에게는 흥미를 끄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유후인 마을 조성의 과정을 해설하는 해설가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한국 관광 가이드들이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유후인 마을을 빠르게 방문시키고, 쇼핑에 집중하는 모습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유후인의 특징은 외부 관광객 보다는 지역민을 먼저 소중히 생각했고, 지역민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해야 관광객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을 만들기에서 학습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71년 유후인에서 시작된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의 학습과 주민포럼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공유와 학습없는 마을 만들기는 지속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려 40년 전, 이 모임의 리더와 주민들이 미래의 유후인을 만들기 위해 했던 학습과 아이디어 회의를 먼저 따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이벤트(소고기 먹고 큰 소리치기, 유후인 영화제, 유후인 음악회, 불축제 등)를 시도해 보고 마을 경관과 특성을 해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상점이나 건물을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학습과 평가 없는 사업은 쉽게 중단되거나 갈등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갈등도 학습으로, 마을 비전도 학습과 토론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방문을 통해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을 이끈 분들의 근황을 묻고 싶었고, 현재의 방문객은 얼마나 되는지, 유후인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등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아쉽게도 묻거나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갈 수록 한국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방문객들의 연령이 더 어려지는 것 같고, 주차장이 좀 늘었고, 이름난 식당이나 온천은 여전히 본인들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협동조합과 유한회사 역시 왕성한 지역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시에 도착해서 오후 6시 30분까지 머물렀습니다. 날씨 때문에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계속 걸어서 피곤했지만 촉각을 곤두세워서 사람 구경과 풍경을 2007년 방문과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혹시 제 글을 읽고 유후인의 현재 방문객 수나 변화된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이상 2박 3일의 짧은 일본 규수지역 마을 만들기 탐방을 아쉽게 마칩니다.

 

<유후인의 유명한 기린코 호수 가는 길>

 

비오는 유후인 풍경, 공원에 놓인 폐기차가 눈길을 확 끕니다.

 

금상 고로케, 자동차 박물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매이션 캐릭터 샵

 

<소고기 스테이크 벤또를 파는 식당, 봄에 가면 풍경이 너무 멋질 것 같았습니다>

 

<관광객들이 저렴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A-COOP 내부 모습, 5시 이후 도시락 반갑 구입가능>

 

<유후인 상점가들 내부의 오밀 조밀한 캐릭터 상품들>

 

<저녁 6시 40분 기차를 기다리면서, 유후인 역>